본문 바로가기

관우

(11)
삼국지 3 동탁 여포를 꾀어내다 4 이튿날, 성 밖에서는 정원이 군을 이끌고 싸움을 벌인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동탁은 분노에 눈이 붉어지면서 이유와 함께 군을 이끌고 나서 맞이하기로 결심한다. 양쪽 군대가 마주치자 여포가 금관을 쓰고 백화전포와 당예개갑을 차려입고 허리에 사만보대를 차고 말에 올라타 방천화극을 손에 들고 등장한다. 그리고 정건양(정원)을 따라 진 앞으로 나오는데, 정건양은 동탁을 가리키며 욕설한다. "국가가 불행한데 환관이 권력을 농단하고 만백성이 도탄에 빠진 것을 보면 네놈은 손톱만한 공을 가진 게 없어. 그런데 어찌하여 폐립을 어지럽히며 조정을 혼란스럽게 하는가!" 동탁이 아직 대답하지 않은 채 여포가 다가오자, 여포는 마치 번개처럼 다가와 말을 몰아붙인다. 동탁이 빠르게 후퇴하며 정건양은 군을 이끌고 동탁을 덮친다. ..
삼국지 3 동탁 여포를 꾀어내다 3 한편, 민공은 단규를 추격하여 마침내 붙잡아물어본다. "천자는 어디에 계십니까?" "도중에 이미 서로 헤어져 어디 계시는지는 모릅니다." 민공은 단규의 머리를 베어 머리말 목에 걸고 병력을 나누어 사방으로 흩어져 찾게 하였다. 혼자 말을 타고 길을 따라가던 중, 단규의 머리를 발견하고 최의의 장원으로 이끌려왔다. 최의가 단규의 머리를 보고 묻자, 민공이 상세히 설명했다. 최의가 민공을 데리고 황제와 만났을 때, 군신들이 모두 통곡하는 장면이었다. 민공이 말했다. "나라에 하루라도 임금이 없을 순 없습니다. 폐하, 도성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최의의 말이 듣히자, 황제를 안심시키고 최의의 장원을 떠났다. 그리고 진류왕은 민공과 함께 황제를 만나러 갔다. 군신들이 모두 통곡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민공이 말..
삼국지 3 동탁 여포를 꾀어내다 2 장양과 그 동료들은 이미 하진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원소는 계속해서 하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 밖에서 원소는 큰 소리로 외쳤다. "장군! 어서 수레에 타세요!" 그 순간 장양과 그의 동료들은 하진의 시신을 들고 나와 담장 위에 던지며 이야기를 전해왔다. 이에 원소는 분노의 목소리로 절규했다. "고자 놈이 마음대로 하진을 대신하여 죽였구나! 이 미친 놈을 제압하는 자들은 앞으로 나와라!" 하진의 부장인 오광이 청쇄문 밖에서 화재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한편, 원술이 군을 이끌고 궁궐 내부로 침입하여 환관들을 찾아내어 남녀노소 상관 없이 모두 죽였다. 이와 동시에 원소와 조조도 빗장을 부숴 들어가 궁궐 안으로 진격했다. 조충, 정광, 하훈, 곽승 등은 달아나려 하다가 취화루 앞에서 붙잡혀 육젓으로 변하게..
삼국지 3 동탁 여포를 꾀어내다 1 조조는 하진에게 다가가며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사태의 근원은 황제의 권력 속에서 숨어있습니다. 임금께서 불합리하게도 권력과 주목을 환관들에게 던져주어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만약 우리 목표가 죄를 청산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 사태의 원흉을 제거하는 것이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다른 목표가 있다면, 단 한 사람을 옥리에 가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외부의 병력을 동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이 일이 실패하면 누설될 가능성이 크니까요." 하진은 분노하며 말했다. "당신은 맹덕의 의도를 의심하는 것입니까?" 조조가 물러나며 말했다. "우리가 천하를 혼란시키는 것은 분명히 하진입니다." 하진은 다시 감정을 가리고 조용한 표정으로 하진에게 비밀 조서를 건네주었고, 그 ..
삼국지 2 장비의 분노 4 백관이 만세를 울려 허공을 가득 채우고, 정식한 절을 마치자 원소가 미소를 띄며 궁궐 내로 들어왔다. 원소는 조용히 걸어다니며 건석을 찾았다. 그러나 건석은 이미 궁궐 정원에 숨어 들어간 상태였다. 꽃그늘 아래에서 중상시인 곽승에게 잡히고 말았다. 건석은 원래 금군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그와 함께 한 모든 병사들이 배반하고 투항한 상황이었다. 원소가 하진에게 다가가 말했다. "내시들이 도당을 결성하려 합니다. 지금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오늘 그들을 모두 처단하십시오." 하진은 조금 고민하다가 이내 결심했다. 이 소식을 들은 장양 등은 위급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하태후에게 달려가서 상황을 알렸다. "대장군 건석은 황제를 해치려고 계획한 한 사람 뿐이며,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삼국지 2 장비의 분노 3 한편, 십상시는 중권을 장악하며 상의하고, 그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벌을 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조충과 장량은 황건적을 격파한 장사들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거부하면 황제에게 표를 올려 파직하도록 했다. 황보숭과 주준도 뇌물을 주지 않아 조충 등이 표를 올려 파직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황제는 조충 등을 다시 거기장군으로 임명하고, 장량 등 13명을 모두 열후로 봉하였다. 그 결과 조정은 더욱 혼란스러워지며, 인민들은 탄식하고 원망하게 되었다. 이에 장사에서 도적 구성이 반란을 일으키고, 어양에서는 장거와 장순이 반역하여 장거는 천자를, 장순은 대장군을 자칭했다. 지방에서는 반란의 표가 속출했지만 십상시는 모두 감추고 황제에게 알리지 않았다. 어느 날 황제가 후원에서 십상시에게 연회를 열어 음주..
삼국지 2 장비의 분노 2 차갑게 서린 북문에서 손중이 이끄는 도적떼가 뚫고 나가는데, 그들은 현덕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나 전의를 잃은 손중은 현덕의 활을 맞아 거꾸로 낙마하고 만다. 주준의 대군이 손중의 뒤를 이어 공격하여 참수당한 도적들은 수많았고, 투항자들도 상당히 많았다. 남양 일대의 십수 개 고을은 주준의 군대에 의해 모두 정복되었다. 주준은 병력을 거느리고 귀경하면서 황제로부터 조서를 받아 '거기장군 하남윤'으로 임명되었다. 주준은 표를 올려 손견, 유비 등의 기여를 아뢰었다. 이에 손견은 공으로서 병사들의 노고와 현덕, 관, 장의 노력을 감사히 받아들여 별군사마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벼슬을 기다렸던 유비는 벼슬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삼형제는 벼슬을 받지 못해 답답함을 느끼며 거리를 서성이고 있는데, 낭중..
삼국지 2 장비의 분노 1 한편, 하동태수 동탁 '중영'은 농서의 임조 출신으로 원래 교만한 성격을 가졌다. 어느 날 현덕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자 장비가 성내 죽이려 들었다. 이에 현덕이 관공과 함께 급히 가해 장비를 말렸다. "조정에서 임명한 관리를 어떻게 함부로 죽이려 하느냐?" "저 저리 있는 쓰레기를 못 죽이면, 그 아래에서 명령을 받아야 하겠는데, 그렇게 되기 싫어요! 만약 형들이 머무르려 한다면, 나 혼자라도 떠나버릴 겁니다!" 이에 현덕이 말했다. "우리 세 사람은 의리로써 함께 살아가기로 했는데, 어찌 그렇게 헤어지겠어요? 차라리 우리 모두 다른 데로 갈게요." "그렇게 된다면, 제 마음도 조금이나마 누그러지겠군요." 세 사람은 군을 이끌고 밤이 되었어도 휴식 없이 주준에게로 향했다. 주준은 병력을 모아 장보를 물리..
삼국지 1. 도원결의 : 황건적을 참하여 공을 세우다 3 정원지가 베이자 도적들이 모두 무기를 거꾸로 잡고 도주하는 모습을 보았다. 현덕이는 병력을 이끌고 도적들을 추격하였고, 도적들은 대단한 수로 투항해나갔다. 결국 현덕군은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다. 유언은 현덕을 맞아들이며 군을 환영했다. 다음 날, 청주태수인 공경이 공문을 보내어 황건적이 청주성을 포위하고 함락되지 않기를 청하였다. 유언은 이를 상의한 뒤 현덕이에게 말했다. "나가서 구해올게요." 유언의 제안에 따라 현덕이는 병력 5000을 거느리고 청주로 향했다. 도적들은 구원군을 보고 병력을 나누어 혼전하였다. 현덕군은 중과부적인 전투에서 이기지 못하고 30리 정도 물러나 야영하였다. 현덕은 관우와 장비에게 다가가 말했다. "우리는 적이 많고, 우리는 적으니까 기습을 통해 승리해야 해요." 관우는 ..
삼국지 1. 도원결의 : 황건적을 참하여 공을 세우다 2 한무제는 예로부터 유승의 아들, 유정을 귀한 인물로 여겨왔다. 그러나 한무제의 탁록정후(자식이 공적인 지위에 임명되는 풍습) 이후, 예전에는 작금으로 바치던 공금이 모자라게 되면서 유정은 제후의 지위를 잃게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한 나라는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 한 갈래는 탁현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 조상은 유웅이고 부모는 유홍이었다. 유홍은 어린 시절 효렴(어진 사람을 관리로 임명하는 제도)으로 벼슬을 시작했지만, 불행히도 일찍 요절하고 현덕(어진 어린이를 관리로 뽑던 제도)이라는 아들은 매우 어린 나이에 혼자 어머니를 모시며 효성의 본보기였다. 가난했기에 짚신을 신고 돗자리를 짜서 생활했다. 그의 집은 탁현 누상촌에 위치했는데, 동남쪽으로는 뽕나무가 자란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는 다..